1947년 런던 태생의 '제인 버킨'은 '세르쥬'를 만나기 전에는, 여배우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배우수업을 하며, 겨우 배우로 데뷔한 작은 영국 아가씨에 지나지 않았다. 18살 때 'The Knack'란 영화에 처음 얼굴을 내밀었던 '제인'은 스무살이 되던 해 1967년 빠리로 향했고 그후, 세르쥬와의 운명적인 만남은, 그녀의 인생에 전환기를 가져오게 했다. 이미 '브리지뜨 바르도', '발레리 라그랑쥬', '미레이유 다르꼬' 등 섹스어필의 프랑스 여배우들의 앨범을 제작한 바 있는 '세르쥬'는(그후 그는 '까뜨린느 드르보', '이자벨 아쟈니', '바네사 빠라디' 등의 앨범도 제작했다.) 투명한 푸른 눈과 창백한 피부에 육감적인 붉은 입술을 가진 '제인'에게서, 그 안에 감춰진 부서질 듯한 순수한 에로티즘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https://t1.daumcdn.net/cfile/blog/99B7CD345C7A1DFA14)
1969년 '세르쥬'와 '제인'은 '69'를 비롯해서 'L'annee Erotique(에로틱한 해)', 그리고 마치 끊어질 듯한 '제인'의 숨결과 함께 격정적인 사랑을 노래한 최초의 넘버 원 히트곡(프랑스와 영국에서 동시에)인 'Je T'aime, Moi Non Plus(당신을 사랑해... 난 아니야)'을 내놓게 되고 이때부터, 이들의 신화는 시작된다. 이후 세르쥬는 'La Decadanse(데카당스)', 'Di-Doo-Dah', 'Lorita Go Home' 등의 '제인'만을 위한 곡을 쓰기 시작해, 그녀의 내재적 환상을 끄집어내게 된다. 그것의 극치를 이룬 것은, 78년 발표된 'Ex-fan Des Sixties(60년대의 우상들)'과 1983년 '골든 앨범'과 '샤를르 크로상'을 수상한 'Baby Alone In Babylone'일 것이다. 특히 브람스 교향곡 제3번 3악장을 편곡한 'Baby Alone In Babylone'은 '제인'으로 하여금 '세르쥬'의 가장 직접적이고 감각적인 통로가 되게 했고, 이곡은 또한 '제인'을 프랑스 샹송의 감성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가수로 우뚝 서게 했다. 한편, 그녀는 영화에 대한 열정도 버리지 않았다. 영화에 있어서 '제인'은 사뭇 달랐는데, 환상의 너울을 벗어 던진 사실적인 연기를 보여주는데 '끌로드 지디'를 비롯해서 '로제 바딤', '쟈끄 두와이용', '쟝 뤽 고다르', '아그네스 바르다' 등의 감독들, 그리고 물론 '세르쥬 갱스부르'의 영화 등에 출연했다. 그러나 1980년 이혼 후에도 함께 작업을 해오던 그들은 1985년, 45회전 싱글인 'Quoi(무엇)'의 슬럼프로 그들의 조화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해, 20년 가까이 삶과 노래, 영화 등에서 끈끈하게 얽혀졌던 결속은 파경을 맞이하게 된다. 그후, '제인'은 '레오 훼레' 등의 다른 아티스트를 찾아야 했고, '세르쥬'는 새롭게 만난 연인 '밤부(Bambou)'를 제2의 '제인 버킨'으로 만들려 했지만 둘다 실패한다. 한가지 다행한 일이라면, 둘사이에서 태어난 '샤를로뜨 갱스부르'의 성공적인 데뷔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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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의 무방비적인 순수함, 그리고 '세르쥬'의 끈끈하고 퇴폐적인 상상력을 이어받은 '샤를로뜨'는 언뜻, 하얀 백지를 연상하게 한다. 텅 빈 듯한, 그러나 무엇이든 그려 넣을 수 있는 여백이 '샤를로뜨'는 두사람에게 있어서 마지막 보루였던 것이다. 부모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그녀는 열 네살 때 'L'Effrontee(귀여운 반항아)'로 이미 주목을 받으며, 프랑스 영화계에 발을 들여 놓았고, 아버지와 함께한 영화 'Chalotte Forever'에 이르기까지 프랑스 영화계의 유망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아버지와 함께 만든 앨범들에서 '샤를로뜨'는 엄마인 '제인' 뺨치는 에로티즘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제인'과는 달랐다. '세르쥬'는 90년 이제는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된 '제인'에게 마지막 선물을 한다. 그것은 'Amours Des Feintes(거짓된 사랑들)'-이 노래로 '세르쥬'는 20여년에 걸친 그들의 어긋났던 사랑에 대한 참회를 고백했고, 그 이듬해 새로운 모험을 찾아 이 세상을 떠났다.그리고, 또 그 이듬해, 조금은 늙고 초췌해진 모습의 '제인 버킨'은 '세르쥬 갱스부르'의 마지막 유품이 된 '제 7회 Victoire De La Musique'(음악의 승리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여자 가수상을 수상했다. [출처 : 전마리평론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