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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eatles는 1955년, 존 레논(John Lennon)이 사춘기 시절 결성한 Quarrymen으로부터 시작된다.

당시 쿼리멘은 결혼식장이나 친구들의 파티에서 연주하는 정도의 밴드였다. 그러나 이들이 1957년 7월

리버플의 한 교회에서 공연을 갖게 됐을 때, 존 레논은 친구의 소개로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와

처음 만나게 된다. 일주일 후, 폴 매카트니가 쿼리멘에 가입하면서 그와 존 레논은 함께 습작을 해나가며

실력을 쌓아갔고, 1958년 8월에는 폴과 같은 학교에 다니던 1년 후배인 조지 해리슨(George Harrison)을

영입했다. 이로써 트리오 형태를 갖추게 된 쿼리멘은 1950년대 후반에 걸쳐 밴드명을 여러 번 바꾸다가

1960년, '실버 비틀스(Silver Beatles)'라는 이름을 갖는다.

 

이는 그들이 좋아하던 '버디 홀리와 딱정 벌레들(Buddy Holly & The Crickets)'에서 착상한 것으로 당시

유행하던 단어인 'Beat'를 결합한 것. 그리고 베이시스트로 존 레논의 친구인 Stuart Sutcliffe와 드러머

Pete Best를 영입. 5인조 체제를 갖추게 된 비틀스는 독일 함부르크의 클럽가에서 하루 8시간 이상의

연주를 하는 등의 강행군을 통해 실력을 쌓아갔다. 함부르크에서의 연주를 마치고 1961년 리버풀로

돌아올 때는 스튜어트 스투클리프가 밴드에서 탈퇴, 이듬해 1962년 4월 10일에는 뇌출혈로 사망했다.

리버풀로 돌아온 비틀스는 당시 레코드 매장 사장이었던 브라이언 옙스타인(Brian Epstein)과 계약을

맺게 됐다. 브라이언 옙스타인이 비틀스의 매니지먼트를 맞게 된 것은 우연한 사건 때문. 한 손님이 그의

매장에 찾아와 비틀스의 앨범을 찾았는데, 그는 비틀스를 모르고 있었던 것. 당시 영국 밴드에 관해서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자부하던 그는 내심 자존심이 상했고, 이 때문에 비틀스가 연주하던 클럽을

찾아가게 된 것이었다. 비틀스의 재능을 알아본 브라이언 옙스타인은 그들에게 레코딩 계약을 체결해

주기 위해 많은 레코드사를 찾아다닌다. 그 중에는 영국의 대규모 레코드사인 데카(Decca)도 있었지만

당시 비틀스는 오디션에서 탈락했다. 그러던 중 당시 EMI 산하의 레이블 팔로폰(Parlophone)의 프로듀서

조지 마틴(George Martin)을 만나게 된다. 당시 클래식 앨범만을 제작하던 팔로폰에서 코미디 레코드 등을

제작하고 있던 조지 마틴은 비틀스와 레코딩 계약을 체결, 마침내 비틀스의 앨범이 발매되기에 이른 것.

그러던 중 62년 8월에는 드러머 Ringo Starr가 '로리 스톰 앤 허리케인(Rory Storm And The Hurricanes)'이란

밴드에서 탈퇴해 비틀스에 가입, 이로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밴드 비틀스 4인조가 완성된다.

 

 

 

 

이들은 62년 9월, EMI의 애비로드(Abbey Road) 스튜디오에서 그들의 자작곡 'Love Me Do'를 녹음,

이 싱글은 영국 차트 20위권까지 진입하는 순조로운 출발을 보여줬다. (당시 브라이언 옙스타인이 차트 진입을

위해 대량의 싱글을 구입했다는 루머가 있기도.) 그리고 이후 1963년 2월 발표한 'Please Please Me'가

차트 1위를 차지하면서 비틀스의 성공 시대는 본격적으로 막을 열게 된다. 앨범 [Please Please Me]가 30주간,

뒤이어 발매한 두 번째 앨범 [With The Beatles] 21주간 영국 차트 1위를 차지하면서 비틀스는 가장 성공적인

밴드가 됐다. 비틀매니아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질 정도로 영국 내에서 비틀스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에서 비틀스는 여전히 무명 밴드에 지나지 않았다. 당시 미국에서는 Vee-Jay와 같은 소규모

레이블을 통해 그들의 히트곡이 소개되는 정도였을 뿐이었던 것. 그러나 1964년 초 싱글 'I Wanna Hold

Your Hand'가 미국의 한 라디오 방송에서 소개되면서 싱글 발매 2주일이 되기도 전에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에 오른다.'I Want Hold Your Hand'의 인기로 1964년 2월 7일 비틀스는 마침내 미국에 상륙. 1964년

한 해동안 비틀스는 'She Loves You', 'Can't Buy Me Love', 'Love Me Do', 'A Hard Day's Night', 'I Feel Fine'를

차례로 빌보드 차트 정상에 올려놓으며 전 미국을 휩쓸었다. 또한 1964년 4월 'Can't Buy Me Love'가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했을 때는 'Twist & Shout', 'Please Please Me', 'I Saw Her Standing Here', 'I Want To Hold Your

Hand'를 각각 2,3,4,5위에 올려놓는 기염을 토하기까지.이러한 성공은 이후 비틀스가 보다 발전된 사운드와

작곡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이후 발표된 [Help!], [Rubber Soul], [Revolver] 등이 그 예다. 특히 [Help!]에 수록된 'Yesterday'는 당시

비틀스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던 비평가들에게도 매력적으로 들릴 수밖에 없었다. [Help!]를 바탕으로 비틀스는

[Rubber Soul]에서 보다 진보적인 음악을 추구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 앨범은 틴 아이돌 스타로서의 비틀스가

아닌 음악인으로서의 비틀스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이전의 단순한 곡 구성에서 벗어나 보다 발전된

하모니와 다양한 창법, 그리고 인도의 전통 악기 시타를 사용하는 등 다양한 변모를 이뤄낸 앨범이 바로

[Rubber Soul]인 것. 그러나 1966년에 접어들어 [Revolver]를 발표할 당시 비틀스는 라이브 공연을 자제하게

된다. 열악한 라이브 기술과 음악적으로 무의미한 공연에 회의를 느끼게 된 것. 이미 예정돼 있던 독일 순회

공연 등을 갖게 됐으나 이들은 결국 1966년 8월 29일 미국 샌 프란시스코의공연을 끝으로 순회 공연을 더 이상

갖지 않았다.

 

엔터테이너로서의 활동을 자제하면서 시간적 여유를 갖게 된 이들은 각각 개인적인 활동을 시작, 존 레논은

'How I Won The War'라는 영화에 조연으로 출연하고, 폴 매카트니는 영화 'Family Way'의 영화 음악을

맡았으며, 조지 해리슨은 인도 음악과 사상에 심취해 있었다.그리고 1967년 이들은 새 앨범 작업을 위해 다시

애비로드 스튜디오에 모이게 된다. 몹탑(Mop-Top) 스타일(더벅머리에 정장차림)에서 벗어나 머리를 기르는 등

이미지 변신을 꾀한 비틀스는 더 이상 틴 아이돌 스타가 아니었다. 그리고 이러한 그들의 변화는 그들 최고의

명작으로 꼽히는 앨범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를 탄생시켰다. 최초의 컨셉트 앨범으로 평가

되는 이 앨범은 그 동안 찾아보기 어려웠던 보다 깊이 있는 주제와 발전된 음향 효과, 다양화된 악기를 도입하는

실험적인 면모를 보여줬다.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가 미국 차트 정상에 오르는 성공적인 결과를 낳고 있는 동안

1967년 8월 비틀스의 매니저 브라이언 옙스타인이 약물 과용으로 사망한다. 그 뒤 비틀스는 결속력이나

비지니스적인 면에서까지 점차적으로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 폴 매카트니가 이러한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리더쉽을 발휘했지만 상황은 오히려 더욱 악화돼 갔다.

그는 TV영화 'Magical Mystery Tour'를 위해 직접 각본에서부터 편집에 이르기까지 직접적으로 나서기도

했는데 이는 평론가들로부터 혹평을 받았고, 나머지 멤버들은 폴의 리더쉽에 불신감을 갖게 됐다.

한편 1966년 말 오노 요코라는 일본 출신의 전위 예술가를 만난 존 레논은 밴드 활동에는 점차 무심한

태도를 보였고 다른 멤버들도 스튜디오에서 함께 녹음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서로 개인적인 활동에 몰두했다.

 

그러나 이러한 분열 상태에도 비틀스는 1968년 말 새 앨범 제작을 위해 애비로드 스튜디오에 다시 모였다.

이 앨범은 더블 앨범으로 발매됐는데, 이는 수록곡 선정에 있어 멤버들이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기 때문.

그럼에도 불구하고 [The Beatles (The White Album)]은 그 어느 앨범보다 다양한 사운드를 들려줌과 동시에,

당시 대중 음악의 모든 장르를 아우르는 다채로움을 보여줬다. 이 앨범은 비틀스의 또 다른 역작으로 평가

됐지만 그 성공에도 불구하고 비틀스의 분열은 더욱 심화돼 갔다. 1969년 7월, 비틀스는 다시 애비로드

스튜디오에 모여 마지막 앨범이라 멤버 모두들 생각한 [Abbey Road]를 녹음한다. 그리고 1970년 4월

폴 매카트니가 비틀스 탈퇴 선언을 공식 발표, 결국 비틀스는 해산됐고, [Abbey Road] 이전에 녹음했던 앨범

[Let It Be]가 뒤늦게 발매됐다.

 

비틀스 해산 후 수많은 재결합설이 떠돌았지만 1980년 12월 8일, 존 레논이 피살되면서 비틀스는 더 이상

앨범을 함께 발표할 수 없게 됐다.다만 1995년 생존한 나머지 멤버들이 존 레논의 미발표곡 'Free As Bird'의

녹음을 위해 스튜디오에 모였고, 비틀스의 미발표곡과 미공개 트랙들을 모은 앨범 [Anthology] 시리즈를

1966년까지 3개의 앨범으로 발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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