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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멤버

 

1기 - 존 로드, 닉 심퍼, 리치 블랙모어, 로드 에반스, 이안 페이스
2기 - 존 로드, 리치 블랙모어, 이안 페이스, 이안 길런, 로저 글로버
3기 - 존 로드, 리치 블랙모어, 이안 페이스, 데이비드 커버데일, 글린 휴즈
4기 - 존 로드, 이안 페이스, 데이비드 커버데일, 글린 휴즈, 토미 볼린
현재 - 이안 길런, 로저 글로버, 이안 페이스, 스티브 모스, 돈 에어리

 

*결성


1968년 영국 Hertford에서 "리치 블랙모어"를 중심으로한 5인조 헤비 메틀 그룹으로 결성된 Deep Purple은 1975년

기네스북에 "세계에서 가장 소리가 큰 밴드"로 이름이 오를 만큼 고출력의 헤비 메틀을 잉태시킨 장본인이다.

("딥 퍼플"이라는 그룹 이름은 "리치 블랙모어"의 할머니가 좋아하던 노래에서 따왔다고 한다.)


또한 이들은 헤비 메틀 뿐 아니라 프로그레시브 락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11살때부터 기타를 치기 시작한 "리치 블랙모어(영국 웨스턴 수퍼 메어 출생)"는 17살때 세션 연주인으로 활약하다

독일의 함부르크로 옮겨 갔는데, 그 곳에서 1968년 3월 "존 로드(아트우즈 그룹에서 4년간 활동)"등과 그룹을 결성했다.


 

 

 

*활동
 

-1기


"로드 에반스(보컬)", "닉 심퍼(베이스)", "존 로드(키보드)", "리치 블랙모어(기타)", "이안 페이스(드럼)"

사운드적 특징은 전형적인 1960년대 하드락 사운드에 "존 로드"의 클래시컬한 프로그레시브적인 사운드가 결합되어

있다. 1968년 첫 싱글 "Hush(리메이크 곡)"가 크게 히트하면서 데뷔앨범 [Shades Of Deep Purple]이 성공했으며

1968년 말에 미국 순회공연을 했다. ("Kentucky Woman"도 원곡이 "닐 다이아몬드" 노래다.) 

두 번째 앨범 [Book Of Taliesyn]

  

-2기(최고의 전성기)


1969년 7월 "로드 에반스", "닉 심퍼" 탈퇴, "이안 길런(보컬, 에피소드 식스의 멤버)", "로저 글로버" 가입 1970년

"존 로드"가 작곡한 "락밴드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이 [Deep Pur-ple/The Royal Philharmonic Orchestra]라는

표제로 발매되었다. [Concerto For Group And Orchestra] 라이브 앨범은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앨범으로

상업적인 성공은 실패했지만 음악적으로는 완벽에 가까운 완성도를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1971년 [Fireball]"이 히트했고 1972년 [Machine Head]는 골드를 기록했다.(1972년 앨범차트 10위) 이후 발표된

[Who Do We Think We Are]와 [Made in Japan]이 줄줄이 골드를 기록했는데 이들의 최대 히트곡중 하나인

"Smoke on The Water"는 최고의 히트작이자 락뮤직의 고전으로 평가된다.
[Made in Japan]앨범은 일본에서 제작이 되어서 처음에 이름을 그렇게 붙였지만 Made in Japan이라는 용어가 당시

미국사회에 반감을 불러 온다는 판단하에 [Printed in Japan]으로 바꾸었다.


-3기


1973년 6월 보컬의 "이안 길런", "로저 글로버" 탈퇴, "글렌 휴즈(베이스)", "데이비드 커버데일(보컬)" 가입(두 멤버의

탈퇴는 "리치 블랙모어"의 독단적인 성격이 멤버들간의 불화를 만들었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는데 "로저 글로버"는

나중에 그룹 "레인보우"로 들어갔다) 보컬리스트의 변화는 이들의 음악에 큰 변화가 되었다.


바로크 메틀, 소울풍의 리듬, 펑키와 블루지한 사운드로 변모한 "딥 퍼플"은 "데이비드 커버데일"의 원초적이며

파워풀한 목소리로 포장되었다. 재편성된 "딥 퍼플"은 [Burn]과 [Stormb-ringer] 앨범으로 골드를 기록했지만 싱글

히트곡을 만들어 내는데는 실패했다.
1974년 "존 로드"는 "토니 애쉬턴"과 독자적으로 [First Of The Big Bands]를 녹음했다.
(토니 애쉬턴 : 패밀리 그룹의 전 멤버였으며 보컬리스트 겸 키보디스트)
    

-4기

 

1975년 5월 그룹내 역할에 권태를 느낀 "리치 블랙모어" 탈퇴, "토미 볼린(기타, 미국인)" 가입"토미 볼린"의 기타 연주는 다분히 퓨전적인 요소가 짙다. 이때문에 강렬한 사운드를 표현하는데는 역부족 이었다는 평이다.

1975년 [Come Taste The Band]가 발표되었고 이 앨범에는 "토미 볼린"이 작곡했거나 공동으로 작곡한 곡이 일곱

곡이나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딥 퍼플"은 1976년 해체를 선언하고 말았다.

 

 

 

*해체


"토미 볼린"은 자신의 두 번째 솔로 앨범인 [Private Eyes]를 녹음한 뒤 여행도중 1976년 12월 약물과용으로 마이애미

에서 사망했다. "존 로드"는 후에 "토니 애쉬톤"과 "딥 퍼플"의 멤버였던 "이안 패이스(드럼)", "폴 마티네즈(베이스)"와

함께 모여서 [Ma-lice In Wonderland]를 발표했다.

"리치 블랙모어"는 그룹 "레인보우"를 창단하여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지만 "레인보우" 역시 "딥 퍼플"처럼 멤버들이

빈번하게 교체되었다.
(1975년 9월 드러머 "코지 파웰"합세, 1979년 4월 베이시스트 "로저 글로버"합세, 1981년 "코지 파웰" 탈퇴)


"데이비드 커버데일"은 1978년 1월에 그룹 "화이트 스네이크"를 결성했고 8월에 "존 로드"가 합세했고 나중에 "이안

패이스"도 합세했다. "화이트 스네이크"는 [Love Hunter], [Ready & Willing]등을 발표하면서 성공했지만, 1980년대

초부터 역시 잦은 멤버교체에 시달리게 된다.

 

 

 

*재결성

 

1985년 "딥 퍼플"의 2기에 해당하는 1970년대 초반 멤버인 "이안 길란", "존 로드", "이안 페이스", "리치 블랙모어",

"로저 글로버"가 의기투합하여 앨범 [Perfect Strangers]를 발표하며 "딥 퍼플"은 컴백했다.
1987년 발표한 앨범 [House Of The Blue Light]는 판매에 호조를 보이며이들의 건재함을 증명했다.
이후 "리치 블랙모어"는 다시 탈퇴하고 1996년 "Steve Morse"가 들어왔다.

 

("리치 블랙모어"는 "Ocean Gypsy"라는 노래로 우리들에게 잘 알려진 "블랙모어스 나잇(Blackmore's Night)"으로

활동을 하면서 음악적 변신을 시도하게 되는데, 그룹의 이름은 자신의 이름과 부인이 된 "캔디스 나잇(Candice Night)"의

이름을 합쳐서 만들었다.) "이안 길런"은 탈퇴후 재 가입했고 그 사이에 "조 린 터너" 가입후 탈퇴했다.

    
사운드는 1970년대의 감동을 선사했지만 나이탓인지 강력한 힘을 보여주는데 실패했고 또 다시 잦은 멤버 교체로

"딥 퍼플"만의 음악적 특성을 상실했다. 
 

*음악적 성향과 영향력

 

"딥 퍼플"의 멤버 계보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면 "영국 하드락과 헤비메틀의 역사를 다 알고 있는 것이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들의 가입과 탈퇴 개인활동, 다른 그룹 결성등은 정말 머리가 아플정도로 복잡하다.
오랜 역사를 지닌 밴드가 초창기 멤버를 그대로 유지하기는 힘들지만 이들처럼 멤버의 변동이 많은 그룹도 찾아보기

힘들다. 멤버 교체가 많다는 점은 음악적인 변화가 많다는 의미와도 상통하며 이러한 점은 이들의 역사가 당시 영국

하드락의 역사와 동일선상에 있다는 의미가 되며 그 속에서 이들이 끼친 영향력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딥 퍼플" 사운드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키보드"에 있다.
기존의 하드락에서 악세사리 역할에 불과했던 키보드를 하드락의 독립된 파트로 만들어서 적용시키면서 독특한

사운드를 창출해 냈다.(이들의 대표곡인 "Highway Star"에 드러나는 현란한 키보드 연주가 대표적인 예가된다.)


이들이 결성해서 활동할 초창기 당시에 하드락 그룹에 키보드 연주자가 있었던 그룹이 "유라이어 힙" 정도였으며

키보드가 중심축에 놓였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들은 단순한 하드락 밴드가 아니라 "프로그래시브 매틀 밴드"로 분류된다.

(이런 점은 "존 로드" 업적에 해당한다.)

 

 

 

 

끊임없는 가입과 탈퇴를 반복하면서 멤버교체가 이루어진 이들은 아직까지 생존해있지만 지금의 "딥 퍼플"은 뼈대만

남은 하나의 상징적인 존재가 되어 있다. 나이가 들어 할아버지 밴드가 되기는 했지만 내한 공연을 지켜본 많은

팬들은 공연을 봤다는 사실만으로 감동받을 수 있을 만큼의 그 무엇이 이들에겐 틀림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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