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션 및 영화]/영화 이야기

타이타닉 (Titanic, 1997)

피터팬2 2010. 3. 22. 08:19

 

  

감독 : 제임스 카메론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 케이트 윈슬렛 / 빌리 제인 

 
Fiction 도 그런 경우가 있지만, Non-Fiction 인 경우에는
사실, 영화보다도 책이 훨씬 재미있는 경우가 많은데
1912년 4월14일에 있었던 이 역사적인 사건,
“타이타닉 호의 침몰“도 책으로 읽으면 무척이나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다.

그런데 이런 역사적인 사실을 기초로 하면서 거기다 로맨틱한
이야기를 가미한 이 1997년도 판, 이 “Titanic” 영화는
책 못지 않게 매우 큰 재미를 안겨주었고 또 흥행을 비롯하여
모든 면에서 대 성공을 거두면서 20세기 말의 최고의 영화로
영화사에 “영원한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
 

  Titanic : 타이타닉 : 1997

 
 북미지역에서만 6억 달러가 넘는(공식 집계:$600,788,188) 흥행기록을
수립한 유일한 영화이며 전 세계적으로는 16억 달러 이상의 흥행을 기록했다.
(총 투자비 역시  약 2억 달러)

또한 그 명성에 걸맞게 받은 상들도 화려하다.
아카데미상의 역사상 “이브의 모든 것”(All about Eve, 1950) 과 함께 공동1위로
무려 14개 부분에 후보작이 되었으며, 또한 “벤허”(Ben-Hur, 1959) 와 함께 공동1위로
무려 11개 부분에서 상을 휩쓸었다. (이후 이 수상 기록은 2004년도에
“반지의 제왕“과함께 공동1위를 공유하게 된다.)

도대체 무엇이 이 영화를 이렇게 대단하게 하였는가?
 
 [멜로영화][1997] 타이타닉 (Titanic)
 

한마디로 (엄청난)스케일이다.
“20세기 폭스” 와 “파라마운트“는 몇 년 전 부터 아주 작정을 하고 각본은
말할 것도 없고 미술에서부터 효과 그리고 분장까지 모든 세세한 분야까지
최고로 투자를 하면서 심혈을 기울였다.(기획: 5년/ 제작: 2년)

처음의 제작 예산이 약1억3천만 달러 정도였다는데 약 7천만 달러가
추가로 들어갔는데도 여전히 최고만을 고집하였다니
그 어찌 최고의 영화가 탄생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이 영화의 제작은 분명 하나의 산업이고 생산이다.
(우리 돈으로 무려 “2천억 원”을 투자하고 “1조6천억 원”의
매출을 올린 어마어마한 프로젝트 이다.)

스튜디오도 “할리우드“와는 별개로 ”San Diego“에서 차로
두 시간 거리의 멕시코, “Baja Califonia" 주의 ”Rosalito" 에다
어마어마한 세트와 모형의 배를 만들어 놓고 (1996년5월) 촬영을 했다고 하는데
최첨단 기술의 CG도 이 영화의 웅장함에 물론 큰 역할을 했다.
 

 
1915년부터 영화화가 되기 시작한 이 “타이타닉호의 침몰“은 1943년과 1953년에도
영화가 만들어졌고 수많은 다큐멘터리와 TV극으로도 또 제작이 되어졌지만
줄거리의 구성면에서도 이 1997년도 판 만큼 드라마틱한 작품은 없었다.

침몰하는 타이타닉 호에 초점을 맞추고 다큐멘터리 스타일로 만들어졌던
기존의 재난 영화들과는 달리, 우선 이 영화에서는 배의 침몰은 하나의 배경 사건일
뿐이고 애절한 청춘 남녀의 사랑이야기가 그 주제가 되고 있는데,
또 그 이야기 자체도 1996년, 현재에 다이아몬드 목거리를 찾아서 심해를 수색하는
첫 장면들과 절묘하게 연결을 함으로써관객들의 흥미를 저절로 유발시킨 것 같다.
 

 

루이 16세가 소유했다 1792년에 사라졌다는 엄청 큰 다이아몬드 목거리는
(일명: 대양의 심장) 이배의 특실에 탑승한 “피츠버그”출신의 철강부호 아들이
약혼녀에게 주려고 금고에 보관하게 되고, 바로 행운의 그 약혼녀는
“Rose Buketer"(Kate Winslet) 인데, 그러나 그녀는 이 여행이 하나도 즐겁지 않고
오히려 속으로 울면서 이 배를 탄다고 말한다.

그리고 항구의 선술집에서 뉴욕 행 3등석 표를 걸어놓고 포커 판을 벌린
“Jack Dawson"( Leonordo Dicaprio) 은”풀 하우스“의 끗발 하나로 인해 그녀를
만나는 행운과 또 죽음이라는 불행을 동시에 겪게 된다.

타이타닉 (Titanic 1997)
 
이렇게 운명적인 이 둘의 만남은 뱃머리에서 두 팔을 벌리고
“I'm Flying"을 외치는 명장면(위의 사진) 과 84년 후에 금고 속에서 발견되는
"1912/4/14 JD" 라는 글이 남겨진 그림(아래 사진) 등으로
감동적인 이야기 전개를 만들어내는데, 배의 침몰로 결코 해피엔딩이 될 수 없었던
이들의 안타까운 사랑이 더욱더 이 영화를 성공시킨 요인이 된 것 같다.
(나무판위에 “로즈“를 올려놓고 자기는 물속에서 동사를 하는 “잭“의 희생적인
모습으로 ”Dicaprio”는 최고의 인기 배우로 부상을 한다.)
 


 
이 대작의 중요한 영화음악을 맡은 “James Horner”는 메인 테마를 미리 만들어 놓고
원래는 “Enya"에게 (”Will Jennings"가 작사를 한) “My Heart Will Go on"을
부르게 하려 했다고 하는데, 캐나다 출신의 “Celine Dion" 의 시원스런
창법이 이 노래를 오히려더욱 빛나게 하지 않았나 싶고,
대신 “Enya"의 분위기는 노르웨이 출신의 “Sissel"을 통해
“스캣 코러스 송”으로 별도의 음악 연출을 다시 하였다.

그리고 스코틀랜드의 파이프악기가 멜로디를 리드하는 메인 테마 연주는
뱃머리 부분에서의 그 명장면과 여러 곳에서 잔잔하게 흐르는데, 이런 곡들이 수록된
이 영화의 OST 앨범 역시 지금까지 “Saturday Night Fever"가 보유한 최고의
판매 기록을 경신 하였으니, 영화 뿐만 아니라 그 영화음악까지도 최고의 기록을
이 “타이타닉”은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나 “Saturday Night Fever"는 LP로서는 여전히 최고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타이타닉

 
“타이타닉”을 이야기하면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음악을 이야기하자면 그건 바로 찬송가인,
“내주를 가까이 하려함은“("Nearer My God To Thee"/ 아래음악)이다.

이 영화에서도 “ I Salonisti"(5인조) 에 의해 마지막 부분에서 연주하는 모습이
나오지만, 실제로 이 배의 침몰 당시 갑판에서 그들은 대피하지 않고 당황하는 승객
들을 위하여 죽어가면서도 몇 번씩이나 이곡을 반복하여 연주를 하였었다고 한다.

당시에 승객들을 위하여 살신성인한 몇몇 승무원들 이야기도 큰 토픽이 되었지만
이 음악인들 만큼 큰 감명을 준 경우도 또 없었다고 생존자들은 증언 하였다.
 

 
이 영화 성공의 최대 공신은 누가 뭐래도 각본을 직접 쓰고
프로듀서와 감독 역할까지, 1인3역의 역할을 완벽히 한 “James Cameron“ 이다.
캐나다 출신으로 이미 “The Abbys"(1989) 를 만들면서 바다하고는 친해진
그 이지만, 그는 역시 “터미네이터”(1984+1991+1996) 시리즈로 유명해진 감독인데
이 “타이타닉”에서는 편집까지도 직접 한 아주 다재다능한 감독이다.

그는 이 영화를 위해 무려 5년간이나 직접 준비 작업을 했다고 한다.

“Leonordo Dicaprio“도 일년 전 의 ”로미오+줄리엣”의 인기를 계속 이어나가면서
20대에 이미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한 느낌이었는데,
그러나 정작 이 영화로 최고의 각광을 받은 운이 좋은 배우는 역시“Kate Winslet“이다.
이 영화 전에도 물론 “Heavenly Creatures"(1994/Peter Jackson 감독),
"Sence and Sensibility"(1995), "Jude"(1996) 등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긴 하였으나,
이 영화의 “로즈”역으로 단숨에 최고의 여배우로 발돋움을 하였다.
 

 
 
빙산과 충돌한 후 2시간 40분만에 허무하게 완전 침몰을 한
이 “타이타닉“호 야말로 “만약에”라는 단 한 개의 가정법만 사용을 해도
그런 비극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인데, 아마도 제일 먼저 바로 선주의 과욕이
없었다면 하는 가정을 들지 않을 수가 없다. 통상 일주일이 소요되던 대서양 횡단
항해에 새로운 신기록을 수립하기 위해, 선주 “Bruce Ismay"는 ”Edward J Smith"
선장에게 최고의 속력으로 항해할 것을 지시 하였다.

최고 23 노트 까지 달릴 수 있는 이 배의 사고 순간의 속력은 22.5 노트 였다고
하는데 일반적인 항해 스피드 였다면 그 정도의 빙산은 충분히 피할 수가 있었다고
한다. (영화 속에서도, 바람도 파도도 없는 완벽한 날씨 속에 바다가 마치 저수지 물
같다고 선장이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너무 날씨가 좋았기에 막 달릴 수가 있었으니
오히려 좋은 날씨도 경우에 따라서는 악천우 못지않게 이런 비극을 만들기도
하나보다.)

이외에도 마침 당시의 “브릿지“에 망원경이 없었다던가,
애초부터 선장이 유빙의 경고를 우습게 생각했다는 점,
또, 일등 항해사인 “William M Murdoch"의 판단 착오나
절대적으로 부족하였던 구명보트의 숫자 등등...
그 많은 경우에서 하나만 사실이 아니었더라도 역사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아래 사진은 실제 인물들의 사진인데 왼쪽부터 앞줄 3번째가 선장.)

 
2,223명이 승선을 하였다가 1,517명(남성:1,360) 이 죽거나 실종되고
706명(남성:332) 만이 살아남는 어처구니 없는 역사를 만들어낸 “타이타닉“호는
”Ireland” 의 ”Belfast”에서 건조가 된 1912년, 당시 최고로 크고 호화로운 여객선
이었다. (최초로 수영 풀이 있었고, 별 다섯 개 급의 호텔 포함. "로즈“가 머물렀던
(특)일등실의 운임은 당시 $4,350 이었는데, 오늘날 돈으로 약 8만 달러 정도라고한다.
아래 사진은 건조시의 실제모습인데 사람크기와 비교되는 프로펠러의 사이즈가 엄청나다. )

 
1912년 4월10일(수요일) 정오에 건조 후, 처녀 항해로
영국 “Southampton"항을 출발하여 프랑스의 “Cherbourg"와(당일 19시)
”Ireland” 의 "Queenstown"(다음날 정오) 을 경유하여 북극해를 통과해서 뉴욕으로
향하던 중,1912년 4월14일(금요일) 자정 경에 캐나다의 “Fundland"에서
200마일 밖에 안 떨어진 곳에서 침몰을 했다.(아래 지도 참조)
 

 

프랑스의 “생 나제르”에서 건조가 된(2005년 1월 출항) “퀸 메리 2호”가
21세기, 오늘날까지 나온 배중 가장 크고 호화로운 (유람)여객선이라고 한다.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눕혀 놓은 정도의 규모로
크기는 이 “타이타닉” 의 약 두 배 정도라고 하는데, 최첨단의 전자 장비로
무장을 하였기에 이런 “타이타닉의 비극“ 같은 일은 앞으로 절대로 없을 것
이라고 한다. 그러나 “절대로“ 라는 말조차 우리는 믿을 수 없는 험한 세상에
지금 살고들 있지 않은가?
 


타이타닉 - 하퍼 목사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