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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시 : 2010.05.21(금) 개인산행
○ 코스 : 상귀3거리(신기철교) - 633봉 - 고리봉 - 655봉 - 삿갓봉 - 두바리봉 - 그럭재 - 567봉
-고정봉 - 문덕봉- 터널 위 - 곰재 - 비홍산성 - 비홍치(24번 도로)
○ 가는길: 경부고속도로 - 천안/논산고속도로 - 호남고속도로 - 고창/담양고속도로 - 호남고속도로
- 곡성IC - 곡성역
<구간별 소요시간> [ 도상거리: 14km ( 이정표 거리: 21km), 산행시간 : 휴식포함 6시간 30분]
- 06:42 상귀 3거리 산행시작
- 08:22 방촌마을 분기점
- 08:39 만학골
- 08:50 고리봉
- 09:31 삿갓봉
- 10:22 갈림길
- 10:36 그럭재
- 11:00 돌탑봉(540봉)
- 11:40 고정봉
- 12:00 문덕봉
- 12:33 곰재
- 12:55 비홍산성
- 13:12 비홍재
※ 고리봉(709m)/문덕봉(598m)
전북에는 5대 바위명산이 있다. 대둔산, 장군봉, 구봉산, 그리고 문덕봉의 좌측에 있는
고리봉, 그리고 고정봉이다. 문덕봉은 고정봉 바로 우측에 있는 봉으로 아기자기한 재미와
함께 소담함을 느끼게 하는 곳으로 팔공산에서 성수산으로 이어지던 호남정맥 줄기가
마령치에서 남족으로 치달아 묘복산과 남대문치, 청룡산으로 이어진 산줄기에 놓였다.
문덕봉에서 고개를 쳐든 산줄기는 이후 삿갓봉과 고리봉을 일으켜 세운다.
고정봉의 주능선길이 암봉과 암릉 및 기묘한 바위로 어우러져 묘미가 있는 바윗길로
일명 남원의 용아장성이라고 부르고 있다.
섬진강이 굽이치는 금지벌 서쪽에 솟아있는 이 봉우리들은 곡성의 동악산과 함께 지리산 서부지역을
바라볼 수 있는 뛰어난 조망처로 봉우리에 올라보면 동북쪽의 덕두산에서 바래봉, 세걸산, 만복재,
노고단으로 이어지는 서북능선의 장쾌한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서부 지리산의 주봉인 반야봉도
한눈에 들어오고 맑은 날이면 천왕봉도 실루엣으로 바라볼 수 있다.
※ 개동지맥 [일명 금남호남천황지맥(또는 섬진 2지맥)]
개동지맥은 금남호남정맥 상의 장수의 팔공산에서 분기해서
개동산(845.9m)-상서산-천황산-연화산-약산-청룡산-노적봉-풍악산-응봉-문덕봉
-삿갓봉-고리봉을 거쳐서 요천이 섬진강으로 합수하는 곡성 인근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59.7km의 비교적 짧은 지맥이다.
◇ ◇ ◇
3일 연휴로 교통이 아주 붐빌 것 같고 주말엔 비예보가 있어, 금요일에 미리
다녀오기로 하였다. 경방기간이 끝나, 설악산 골짜기를 갈까하다가 요즘
국공파들의 단속이 심해 조금 더 지켜본 후에 진행하기로 하고,이번 주는
남원의 용아장성이라 불리는 고리봉/문덕봉을 선택하였다.
이 산들은 개동지맥(금남호남천황지맥)에 속하는 산줄기로서 개동지맥의 첫구간,
반대편 방향에서 진행할 시는 마지막 구간에 속하는 산들이다.
고리봉을 오르는 들머리는 금지면의 택촌마을이나 방촌마을에서 시작하는게
보통이지만, 지맥구간을 이어간다는 의미로 지맥 시작점인 성안마을의 상귀
3거리에서 출발하기로 하였다. 이 들머리는 전남 곡성에서접근하는 것이
더 빠르다. 곡성역에서 택시로 7,000원.
처음 계획으론 비홍재를 지나 응봉-풍악산-노적봉-혼불문학관으로 진행할
예정이었지만,너무 날씨가 더워 무리하지 않기로 하고, 비홍재에서 산행을 멈췄다.
일찍 산행을 접어 가지고 간 밥이나 간식도 먹지 않고, 그대로 매고 하산하고
말았다.찌는 더위에 육수를 한바가지 이상 흘렸지만, 멋진 바위구간이
인상적인 산이었다...
요즘은 지맥이나 기맥을 다시 시작할까 하는 마음도 자주 들지만,
무슨무슨 지맥 또는 기맥 완주 등의 타이틀에 얽매게 되어 산행의 진정한
의미가 퇴색된다. 지금껏 하던 방식대로 내가 가고 싶은 구간이나 산들을
돌아보는 것으로 맘을 고쳐먹는다....
상귀 3거리
오른쪽으로 10m 쯤 올라가면
바로 등로입구가 나온다.
이정표엔 비홍재까지 21km로 나와 있는데, 실제 도상거리는 14km이다.
이곳부터 고리봉까지의 길은 지맥종주자들이 주로 이용하고,
실제 주들머리로는 금지면 방촌마을쪽이 주로 이용되고 있다.
교통호를 지난다.
초입부터 진한 송림향기와 길에 떨어져 있는 솔잎의 푹신한 감촉이 부드럽다.
오름길에 뒤 돌아 본 금지면 들녘과 지나는 기차...
신기철교와 섬진강변
아침햇살이 비추는 역광이라 전망이 깨끗하지 않아 아쉬워하고....
산불났던 지역
섬진강변과 동악산 방면
저 동악산도 꽤 괜찮은 산이다. 특히 아래 도림사 계곡이 멋지다.
600봉
더위에 산행초반부터 땀이 많이 흐른다.
오늘 쉽지 않은 산행이 될 것 같다. 계획한 풍악산-노적봉까지 갈 수는 있을런지...
첫봉을 넘어서자 눈앞에 수려한 암봉이 나타난다.
이 고리봉/문덕봉 라인은 거의 전 구간이 암릉구간이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구간이라 등로는 아주 잘 나있다.
바위에 걸터앉아 이 멋진 풍경을 음미하고...
금지면 하도리 일대의 방대한 들녘
역광과 짙은 개스로 사진이 흐릿하다.
뒤 돌아 본 올라온 능선길
이 고리봉/문덕봉은 거의 전 구간이 소나무로 이루어져 있다.
이렇게 거의 모든 구간이 송림으로 된 곳은 아주 드물다.
당겨 본 문덕봉
섬진강에서 고리봉으로 이어지는 암릉
지나야 할 봉우리들
짙은 송림 향기를 맡으며 좁은 날등을 따르고....
당겨 본 고리봉 정상
전방에 희미하게나마 지리산 반야봉이 시야에 들어오고...
<참고사진>
고리봉로 이어진 암릉능선
천만리 묘
영양천씨의 원래 시조는 중국 명나라 사람인 천엄이다.
그가 중국 영양에 살았기 때문에 본관을 영양이라 했다.
영양 천씨(潁陽千氏)의 중시조 천만리(千萬里) 장군은 명나라 장수로 1571년 무과에 장원으로
급제하고 총절사가 되어 북방의 몽고5부병을 섬멸시킨 공으로 내위진무사가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명나라에 구원병을 요청하자, 장군은 황제의 명을 받아 총수사
이여송과 더불어 조병영양사 겸 총독장으로서 두 아들 상(祥)과 희(禧)를 데리고 철기군
2만을 인솔하여 조선에 건너와 평양, 곽산, 동래 등지에서 대첩을 거두었고,
정유재란 때는 울산 등지에서 왜군을 섬멸했다.
전란이 평정되자 명나라 장병들은 귀국했으나 천만리 장군은 휘하 장수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두 아들과 함께 조선땅에 남아 우리나라 천씨(千氏)의 시원을 이루게 되었다.
이때 조정에서는 그의 혁혁한 전공을 치하하여 자헌대부로 봉조하(奉朝賀)의 벼슬을 내리고
화산군에 봉했으며, 그후 숙종때 왜란 평정의 은혜를 잊지 못하여 명나라 황제를 추모하기 위해
궁중에 대보단(大報壇)을 설치하고, 화산군 천만리(千萬里)도 함께 향사(享祀)하도록 했으며
순종때는 가헌(家憲)의 뜻이 담긴 충장(忠壯)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오른쪽으로 금지면 택촌마을 또는 방촌마을에서 올라오는 길
고리봉에서 삿갓봉으로 이어지는 암릉
중앙이 삿갓봉, 뒤 봉우리가 문덕봉
만학골 갈림길
내려다 본 만학골
뒤 돌아 본 지나온 길
고리봉을 향해 좁은 암릉을 오른다.
조선시대 종5품 하계의 무관인 창신교위를 지낸 경주김씨 부부의 합장묘
산 정상에 묘를쓰면 그 댁은 큰 부자가 되나 아랫마을에는 가뭄이 크게들어
개인적인 욕심으로는 묘자리로 사용하고 싶어도 정상에 묘를 쓰는 것은
금기사항으로 누구도 사용하지 못한다고 하는데....
고리봉은 명산이라하여 가뭄이 심할 때면 기우제를 지내던 곳으로 이 마을 뿐 만아니라
인근 금지면에서도 온갖 정성을 다하여 모셔 왔다고 한다. 수 일 동안 몸을 청결히 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제물을 준비하여 기우제를 지냈는데 제물은 삼실과(대추, 밤, 곶감)과 돼지머리를 쓰고
기우제가 끝나면 그 자리에서 삼실과는 산 아래로 던지고 돼지머리는 땅에 묻고 하산 하였다고 한다.
1945년 이후 아낙네들이 기우제에 참가하여 남자들 보다 아낙네들이 주축이 되어 기우제를 지냈는데,
1973년 6월과 7월에 걸친 극심한 가뭄때 대강면 사석리 아낙네들이 기우제를 지내고 하산하던 도중
큰 비를 만났다 하는데 지금은 거의 천수답이 아닌 수리 안전답으로 되어
우뚝 솟은 고리봉의 영험은 이제 전설로 남아 있다고 한다.
1962년 가뭄이 극심할 때 풍수설에 의하여 고리봉 정상 부근에 있는 묘를 파헤쳐야만 가뭄이
해소된다는 풍문이 떠돌아 대강면 사석리로 갓 시집온 어느 아낙이 자기 증조모님의 묘인줄도
모르고 파헤쳐 버렸다 한다. 그 후에 그 사실을 알고 슬퍼하며 금잔디를 심었다고 한다.
골산(骨山)의 전형을 보여주는 고리봉의 이름은 소금배를 묶어두었던 '고리(還)' 에서 유래한다.
지금 남원 시내를 관 통하며 흘러내리는 요천은 남원 관광단지 앞 물줄기만 둑을 쌓아 뱃놀이가 가능하지만,
1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하동을 출발한 소금배가 섬진강에 이어 요천 물줄기를 거슬러 남원성 동쪽
오수정(참나무정)까지 올라와 닻을 내렸다고 한다.
당시 소금배가 중간 정박지로 금지평원에 머물기 위해 배 끈을 묶어두었던 쇠고리를 바로 고리봉
동쪽 절벽에 박아 놓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소금배와 얽힌 전설이 전하는 고리봉은 조망도 좋지만
산세가 뛰어난 산이다. 동서 양쪽 사면은 거대한 바위 병풍을 연상케 할 만큼 웅장한 산세를 과시하고,
능선은 소나무가 울창한 가운데 부드러운 육산과 아기자기한 암릉이 번갈아 이어져 산행의 즐거움까지 더해진다.
<한국의 산하에서 펌>
고리봉 내려가는 길
삿갓봉으로 이어지는 암릉지대
삿갓봉 왼쪽 아래로 보이는 봉우리가 두바리봉
경관이 아주 멋지다
뒤 돌아 본 고리봉
바위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
하도리의 들녘과 지리산 반야봉
삿갓봉에서 본 고리봉
금지평야를 도도히 흐르는 요천
건너편에 보이는 작은 용아릉이라 불리는 7개 봉우리와 문덕봉
철탑이 있는 곳이 그럭재이다
가파르게 200미터 가량을 내려오면 그럭재가 나온다.
다시 가파르게 200미터 가량을 올라야한다.
오르며 뒤 돌아 본 내려온 길
가파르게 540봉을 향해 오르고
540봉
문덕봉으로 이어진 암릉지대
좁은 암릉길을 지난다.
눈이나 얼어있다면 문덕봉으로 이어진 암릉길은 좀 위험해 보였다.
문덕봉으로 가는 암릉구간의 백미
고정봉을 지나 바라 본 문덕봉
문덕봉 정상
오늘 이곳 기온예보가 31℃라더니 더위가 장난이 아니다.
너무 찌는 날씨에 노적봉으로의 진행이 무리일 것 같아, 비홍재에서 마치기로 결정한다...
비홍재까지는 이제 얼마 걸리지 않아, 서두를 것 없어 정상에 퍼질러 앉아
멋진 풍광을 즐긴다.
금풍 저수지와 뒤로는 교룡산이 희미하게 보이고...
날씨는 맑았지만 너무 개스가 많아 아쉽다.
설악산 용아장릉의 축소판이라 하여 `작은 용아릉' 으로 불리는 문덕봉은 7개의 암봉을 가진
남원의 화산(火山)이다. 전북지역에서는 암릉 산행코스로 단연 돋보이는 산이다.
문덕봉은 옛날부터 암산이어서 불을 상징하는 산(火山)이었다.
따라서 이 봉우리가 바라보이는 마을(수촌, 양촌)은 마을 안에서 화재가 잘 난다 하여
풍수상의 비방을 쓰기도 하였다. 또 문덕봉(文德峰), 문필봉(文筆峰)이라고도 하는데,
이 산의 정기를 받아 예로부터 이 지역에 글을 잘하는 인재들이 많았다고 한다.
오늘 진행하려고 했던 비홍재 건너 응봉-풍악산-노적봉 라인
문덕봉에서 조금 내려오면 나오는 갈림길
진행방향은 왼쪽, 오른쪽은 금풍재 방향 하산길이다
또 조금 더 가면 나오는 갈림길
진행방향은 오른쪽, 왼쪽으론 대강면 평촌리 방향 하산길
곰재 및 터널 위를 지나고, 옥전마을 하산 이정표를 지난다.
88 고속도로
비홍재 가는 길
2~3 봉우리를 넘는다.
또 나오는 옥전마을 하산 이정표
진행방향은 왼쪽이다.
비홍산성
'조선보물도적조사자료'에는 鴻山城石築 約 500間, 우물 4곳으로 기록되어 있다. 남원지, 문화유적 총람에는 '고려말 직제학 양수생의 아내 이씨부인이 남편이 죽은 후 시부모의 개가 권유를 물리치고 홀로 지내다가 왜구 아지발도가 쳐들어 오자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사재를 털어서 비홍치로부터 순창 구미리에 이르기까지 30리의 성을 쌓았는데 전쟁이 있을 때는 마을 양곡을 거두어 성안에 비장한데서 합미성 혹은 합민성 이라고 전해 내려온다고 하였다.
또한 남원지 기록에 의하면 '우물을 파니 감천이 쏟아져 뒷날 사람들이 그성을 가르켜 말하기를 고성, 홀에미성 이라 하였다' 라고 적고있다. 현재는 비홍산정에 약400m가 남아있으며 20-30m씩 2개소가 무너져 있고 높이는 약 2.5m의 석축으로 주위 약 900m 내의 정적(우물자리)이 있으며 와편이 산재하여 있다.
능선 상에 삼각점이 있다.
하산한 비홍재
건너편 응봉방향의 개동지맥 다음구간 입구
남원시 대강면 도곡과 주생면 내동리를 잇는 21번,24번 국도상의 비홍재
하산지점에 노부부가 나물을 캐고 있었다.
나보고 많이 캣냐고 물어, 웃으며 산행왔다고하니 그분들도 웃는다.
곡성이나 남원방향을 물으니 자기들도 이제 내려가려고 한다며 차에 타란다.
대산면 대산마을 근처 24번 국도상까지 태워주셨다.
그분들은 서울에서 살다, 고향에 정착하려 내려오신지는 얼마안되었다고....
이 산골생활이 너무 적적하시단다...
나도 말년에 시골로 내려올 생각이라고 하니
내려오지 말랜다...ㅎㅎ
국도변 버스정류장에서 곡성행 버스를 타고 곡성역으로 회귀하여(\1,400)
간단히 몸을 씻고 귀가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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